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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어린이 황산테러사건 고 김태완군 마지막 가는길
작성자 : 이 ** 
작성일 : 2014-12-21 19:48:16.0 
조회 : 1228 
이 글은 지난 1999년 당시 태완이를 취재 하셨던
'피디수첩'의 김환균 피디님께서 태완이가 떠나고
난 뒤 올리신 글입니다


경북대학교 병원 성형외과 화상병동 6758호
김 태 완

취재하는 동안 내내 고통스러웠습니다.
고통에 힘겨워 하는 태완이를 보면서 숨이 막히고,
그 고통을 바라보는 것 외에 어떤 것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에 자책하는 부모들 앞에서도
멀쩡한 사지를 가지고 있는 제 자신이 한없이
민망했습니다.
저는 태완이를 취재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태완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
태완이를 잊는 것 또한 죄악이다...
취재를 마치고 올라와서 편집하느라 바삐 지내면서도
매일 태완이가 있는 경북대 병원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월요일(7월 5일) 이후로는 전화를
못하겠더군요.
그날 의사로부터 태완이가 '패혈증'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거든요.
패혈증은 치사율이 90%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위로와 격려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태완이 부모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일주일동안 취재하면서 태완이에게
한번도 말을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기본적인 조명도 할 수 없었지요.
갑자기 시력을 잃어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태완이는 작은 소리에도 극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낯선 사람이 있는 기미를 느끼면 아주 날카로와지지요. 그리고 평균 체온이 38.5도(화상 환자들은 체온이 상승한답니다)라서,
뜨거운 조명을 켤 경우, 체온이 상승할 우려가 있어서지요. 지금은 그애한테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는 게 한없이 아쉽네요.
다른 말보다도
'태완아, 힘 내. 너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어',
이 말말예요.
그러면 똑똑하고 영특한 태완이는
틀림없이 그 말을 잘 이해하고 잘 버텨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저의 감상일까요?
부디 6살 태완이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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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KIMSAP(김환균) 등록일 99년07월08일(20:12:38) 취재했던 김환균입니다.

태완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 아침 8시 15분,
햇살이 환하게 비쳐드는 경북대 병원 소아과 중환자실에서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 작별했습니다.
장례식은 모레 있을 예정입니다.
이 방송된 다음 날, 태완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이제 갈래."
엄마가 알아들은 태완이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태완이는 장난치다 죽게 한 '반짝이는 물고기'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렇게 서둘러 떠났는지 모릅니다.
태완이의 영정 앞에는 노래하는 곰인형,
'형아야, 내 혼자 사도 되나?'하고 묻던 골드런 운동화,
롤러 블레이드 탈 때 쓰던 팔꿈치 보호대...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길이 멀어서였을까요?
태완이는 갖고 싶어하던 것 다 두고 가버렸습니다.
어제 오후 6시경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호흡이 빨라지고, 출혈이 계속 되었으며, 혈소판 수치가 떨어졌습니다.
소아과 중환자실로 옮기고 처치를 계속했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 엄마와 아빠는 서둘러 태완이와
작별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태완아, 마음 편하게 잘 가. 엄마, 아빠, 그리고 형아는
조금 있다가 니가 간 곳으로 갈께."
태완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심장이 멎었습니다.
의사들의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태완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8시 15분, 의사들은 태완이가 세상을 떠났음을 확인했습니다.
그토록 착하고 영특했던 여섯살 태완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 속으로 반짝이는 물고기와 함께
태완이가 헤엄쳐 갑니다.
태완아, 잘 가라.
뜨거운 것 붓는 나쁜 아저씨가 없는 세상으로 반짝이는 물고기와 함께 헤엄쳐 가렴.


등록자 KIMSAP (김환균) 등록일 99년07월12(09:45:09)

태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대구에 내려가 취재를 하면서, 취재 이틀째에 올렸던 글입니다.
PC방에 가서 작성했던 글인데 MBC 홈페이지 접속이 좋지 않아 통신에만 올렸었습니다.
시간 순서가 바뀌었습니다만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다시 올려드립니다.
[제 목] 대구에서 김환균입니다 ──────────────────────────────
대구에서 보내드립니다.
태완이가 세상을 떠난지 이틀째입니다.
오늘은 참 슬픈 날이었습니다.
장례식을 지켜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입관식은 늘 남아있는 사람에게 한없는 슬픔을 안겨줍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작별,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이지요.
오늘 태완이의 입관식이 있었습니다.
먼저 태완이 큰이모가 태완이가 입고갈 옷을 사왔습니다. 태완이가 입었더라면 잘 어울렸을 양복 스타일이었지요.
그 옷을 펼쳐보며 엄마는 마치 살아있는 태완이에게 이야기하듯 말을 했습니다.
"태완아 너 이옷 입고 싶었지? 맘에 드니?
너 팬티 안입었다고 찝찝해 했는데 여기 이모가 팬티도 사왔네. 이거 입고 맘 편하게 가. 알았지?"
큰이모는 내내 흐느꼈지만
엄마는 마치 소풍이라도 보내는 것처럼 차분했습니다.
오후 한시쯤 입관식을 했습니다.
태완이가 좋아했던 노래하는 곰인형도 가져갔습니다.
엄마는 태완이 몸의 상처를 바라보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태완아, 안 아팠어?"
옷을 갈아입은 태완이는 의젓했습니다.
아빠는 여느때처럼 아무 표정이 없었습니다.
옷을 다 입히고 나서, 엄마와 아빠와 가족들은
가장 힘든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태완아, 잘가라. 엄마 아빠 곧 갈께. 형아야 잘 되라고 빌어줘."
큰이모는 태완이를 부둥켜 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태완아, 미안해..." 관 속에 태완이의 몸이 눕혀졌습니다. 작고 예쁜, 옻칠을 한 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뚜겅이 닫혔습니다.
시신을 보관하는 냉장고 속으로 태완이가 들어갔습니다.
빈소로 돌아온 엄마는 이 세상의 엄마들이 울 수 있는
가장 슬픈 울음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혼절해버렸습니다.
이모들이 달려들어 몸을 주무르고 손가락을 바늘로 따고
물을 먹인 후에 비로소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영화처럼 때를 맞춰
태완이의 형 태우가 검은 색 싱글에 검은 텍타이를 메고 나타났습니다.
엄마는 곧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어났지요.
태우도 동생의 죽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태우가 동생의 죽음을 충격없이 받아들이게 하려고 일부러 유쾌하게 말을 걸고 동생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쥐어주고, 또 태완이가 좋아하던 '황금로봇 골드런' 책을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태우는 아직 죽음이 무언지 실감하지 못한 듯 책을 읽었습니다.
잠시 후 스님들이 오셔서 태완이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의식을 집전할 때 저 뒤쪽에서 태우가 흐느껴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시작된 가엾은 태우의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쩔 줄 모르는 엄마 아빠에게 울먹였습니다.
"방학하면 태완이한테 선물주려고 준비했는데,
그 선물 이제 어떻게 해."
엄마 아빠는
"태완이는 죽지 않았어.
엄마 아빠 그리고 형아랑 같이 영원히 살거야.
태완이가 형아 좋아한거 너 알지, 네가 자꾸 울면 태완이가 슬퍼할거야. 태완이가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울지마.
엄마 아빠도 안 울잖아."
태완이는 내일 아침 병원을 떠납니다.
아침 9시까지 화장장에 도착해야 한답니다.
그곳에서 태완이는 불꽃으로 타오를 것입니다.
태완이가 불꽃보다 가볍게 먼 길 쉽게 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해 주세요.

글번호[ 2150 ] 태완이의 장례식 등록자 KIMSAP (김환균) 등록일 99년07월10(16:37:15)

"PD수첩"의 김환균입니다.
태완이의 장례식이 오늘 있었습니다.
7시 30분에 발인식을 했습니다.
마지막 태완이를 떠나보내는 자리엔 많은 분들이 와주셨습니다.
언론사에서도 많이 왔구요.
태완이는 영정을 든 형 태우의 인도로 50여일 동안 머물러있던 경북대 병원을 떠났습니다.
태완이의 영구차는 한옥 모양의 지붕을 올린 것이었는데, 영구차와 장의차는 태완이의 사연을 알게 된 장의사측에서 무료로 제공한 것이라고 합니다.
화장터로 가기 전,
태완이는 집(대구시 효목1동)에 들렀습니다.
영구차가 도착하자, 동네 사람들이 몰려나와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태완이의 영혼을 위로했습니다.
미용실 안쪽에 있는 방이
태완이가 잠자고 밥먹고 놀던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태완이가 미안해한
'반짝이는 물고기'가 살던 어항이 있습니다.
엄마는 태완이에게 말했습니다.
"태완아, 이제 반짝이는 물고기에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 물고기 만나거든 잘 놀아 줘."
9시 쯤 화장터에 도착한 시신은 20분쯤 후에
가족들의 슬픔 속에 화덕에 넣어졌습니다.
5번 화덕, 육중한 철문 위에는
'김태완'이라고 적은 팻말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태우를 위해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태완이의 몸이 화덕에 넣어지는
그 순간은 어쩌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소리내어 울었고 아빠는 소리쳤습니다.
"태완아, 아빠가 꼭 잡을께. 태완이 다치게 한 사람
아빠가 꼭 잡을거야"
화덕 문 윗쪽 양쪽에 있는 전등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화덕에 불을 지폈다는 신호지요.
태우가 울기 시작하자 아빠는 태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태우는 제가 든 카메라를 향해 울부짖었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 우리 태완이 다치게 한 사람 꼭 잡아주세요. 대통령 할아버지는 할 수 있어요.
잡아서 많이 혼내주세요..."
두 시간 가까이 지나자 다시 화덕의 문이 열렸습니다.
뼛조각 몇개가 남아있었습니다.
유골을 수습한 뒤, 화장터의 직원이 문을 닫으며,
태완이의 이름을 쓱 문지르고 지나갔습니다.
태완이의 이름이 거짓말처럼 지워졌습니다.
삶이란, 또 죽음이란 그렇게도 쉬운 것인지...
태완이의 시신은 달성에 있는 사찰에 모셔졌습니다.
거기에는 태완이가 걷고 싶다고 말하며,
엄마에게 사달라고 하던 '골드런' 신발도 같이 모셔졌습니다.
저는 태완이와 같이 했던 2박 3일의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풍경,
'세상은 여럿일 수 있구나.'
검은 구름 위로 비행기가 날고 있었습니다.
그 밑에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이 있을 것입니다.
검은 구름 위로 날고 있는 비행기 위로
또 구름의 막이 있습니다.
그 위에 또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저 멀리 구름의 아래 위층 사이로 터진 곳이 환했습니다. 영화에서 표현되듯 너무 빛나고 환해 그곳으로 가기가 겁이나는 그런 게 아니라,
빨리 그곳으로 가고 싶은 예쁜 빛이었습니다.
새가 한 마리 그 환한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높은 곳에 새가 날리는 없고 비행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태완이가 날아가고 있었던 걸까요?
태완이었다면 아마 그 앞에서 헤엄쳐 가는 반짝이는 물고기도 있었을 겁니다.
혹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시거든 그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태완이가 있을지 몰라요.
태완이는 다른 세계로 갔기때문에 우리가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몸을 가졌을 테지만, 그래도 유심히 살펴보세요.
그리고 귀기울여 보세요.
뭐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릅니다.
"형아야, 조금만 참아.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께."


12월 20일 추적 60분을 보며 분노를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15년전 태완군과 부모님의 마지막 약속을 아시나요.
태완군에게 나쁜아저씨 꼭 잡아서 벌주겠노라고 마지막 약속을 하셨습니다.
15년이 흐른 지금 아직도 지키지 못한 약속에 가슴에도 자식을 묻을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비통하고 비통한 세월입니다.
대한민국 경찰 동부서에 묻습니다.
시간이 흘러 흘러가기만을 바라며 지내십니까
그냥 한가족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중의 하나라고 치부하실껀가요.
진정 한아이의 죽음의 이유는 경찰이 아닌 유가족이 밝혀야만 하는것인가요
끔찍하고 고통스럽게 아이가 죽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동부 경찰서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국민의 한사람으로 진실이 규명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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